주유소 최고가격제 11월 13일 만료, 5조6000억의 연말 계산
11월 13일이면 지금 주유소 벽면 가격표를 누르고 있는 특별한 규칙의 유효기간이 끝납니다. 정부가 중동 전쟁발 유가 급등에 대응해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 현행 조치인 제11차 상한가가 만료되는 날입니다. 휘발유는 리터당 1,784원, 경유는 1,773원, 등유는 1,380원이 못 넘도록 고정해 온 지 벌써 7개월째입니다.임시 대책으로 시작한 이 제도는 4주 단위로 상한가를 갱신하며 열한 번을 넘겼습니다. 임시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살아남았고, 이제 정부 앞에는 계산 문제 하나가 놓였습니다. 열두 번째 갱신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계산서를 이제 그만 늘릴 것인가.계산서는 이미 충분히 큽니다. 지금까지 반영된 정유사 손실 보전 예산만 5조 6,000억원대이고, 올해 4분기에만 1조 4,497억원이 편성돼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싼 기름값이 정확히 누구의 돈으로 유지되는지, 왜 정부가 출구를 못 찾는지, 그리고 연말을 나는 소비자가 미리 챙겨야 할 것들을 정리합니다.

그림: 주유소 최고가격제 11월 13일의 선택 — — 5조6000억 계산서와 출구전략
휘발유 리터당 1,784원의 상한가는 7개월간 5조6000억의 재정으로 유지된 값이다. 주유소에서 덜 낸 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라 장부에 적립된다.
① 임시 대책은 어떻게 7개월을 살아남았나
최고가격제의 작동 원리는 단순합니다. 정부가 도매와 소매 단계의 가격 상한선을 고정하고, 시장가격이 상한을 넘으면 정유사와 주유소가 초과분을 못 받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예산으로 보전합니다. 가격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마진을 국가가 대신 내주는 구조입니다.효과는 실제로 측정됐습니다. 한국은행 신현송 총재는 국정감사에서 이 제도가 유가 충격이 다른 품목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고 물가상승률을 약 0.6%포인트 낮췄다고 밝혔습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9%였으니, 제도가 없었다면 물가는 3.5% 안팎을 기록했을 계산입니다. 언론 보도에서도 최고가격제가 리터당 239원어치 휘발유값 상승을 막았다고 집계됐습니다.그런데 장기화의 이유는 효과가 아니라 환경입니다. 국제유가가 110달러대에서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는 동안 출구 타이밍이 계속 사라졌습니다. 중동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상한가를 풀었다가 국내 주유소 가격이 폭등하면 그 정치적 비용은 정부가 떠안게 됩니다. 4주마다 '아직 아니다'를 반복하는 7개월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② 5조6000억 계산서의 구조 — 보이는 예산과 보이지 않는 손실
보전 예산의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고 있습니다. 제도 도입 후 누적으로 반영된 손실 보전 예산은 5조 6,000억원대에 달하고, 정부는 올해 4분기에도 제도를 유지한다고 가정해 1조 4,497억원을 추가로 편성했습니다. 연말까지 가자면 4주 단위 갱신 한 번 한 번이 조 단위 지출을 다시 부르는 구조입니다.더 큰 문제는 장부에 다 잡히지 않은 부분입니다. 정유업계가 추산한 누적 손실은 최대 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산에 반영된 보전 규모와 업계 추산 사이 간극이 곧 논쟁입니다. 무엇을 보전해 주는지, 어떤 산식으로 계산하는지를 두고 정부와 정유사가 평행선을 달리고, 국내 공급 우선을 위한 수출 물량 제한까지 업계가 떠안으면서 정유사들의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 누적 보전 예산 — 5조 6,000억원대, 4분기에만 1조 4,497억원 추가 편성
- 정유업계 추산 손실 — 최대 8조원, 보전 범위와 산정 기준을 두고 정부와 업계가 이견
- 수출 물량 제한 — 국내 공급 우선 조치로 정유사가 포기한 해외 판매 이익
- 재정 반영 — 올해분 손실 정산 재원을 올해 예비비와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
이 돈이 흐르는 시점을 봐야 합니다. 나랏빚이 처음으로 1,500조원을 넘어선 2027년 예산 편성 국면이고, 같은 주에 이형일 부총리는 금리 상승기의 취약 차주를 위한 추가 대책을 예고하면서 11월 국채 발행 물량마저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정의 사방이 조이는 시기에 기름값 보전 5조6000억은 다른 예산과 자리를 바꿔 앉는 돈입니다. 취약계층 지원이든, 국채 이자든, 어딘가에서 반드시 양보가 일어납니다.
기름값 보조금은 나라가 내주는 돈이 아니라 순서만 미뤄두는 돈이다. 재정 적자 시대의 보조금은 언제나 다른 예산과 자리를 바꿔 앉는다.
③ 싼 기름값의 부작용 — 소비 신호의 왜곡
가격은 소비를 조절하는 신호입니다. 상한가가 이 신호를 끊어버리면 소비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기획예산처도 이 점을 의식해 최고가격제의 연장 여부를 판단할 때 휘발유 소비 증가 가능성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기름값이 싸게 유지되면 운전은 늘고, 석유 수입 지출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물가는 잡지만 수요는 못 잡는 통제입니다.보편 혜택의 역설도 있습니다. 상한가 혜택은 소득과 무관하게 리터당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태우는 차가 가장 큰 수혜자가 됩니다.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 오너가 받는 연간 보전액은 출퇴근용 소형차 운전자보다 훨씬 큽니다. 반면 유가 상승에 정말로 취약한 배달업·운송업 같은 고연료비 소상공인은 상대적으로 얇은 보호를 받을 뿐입니다. 같은 돈을 쓰고도 누구에게 갔는지는 달라집니다.장기 정책 방향과도 충돌합니다. 정부가 같은 시기에 전기차 전환과 에너지 효율화를 추진하는 동안 기름값을 인위적으로 싸게 유지하면, 연료를 아끼려는 유인이 그만큼 약해집니다. 한쪽에서 저탄소를 밀고 다른 쪽에서 유류 소비를 보조하는 양방향 정책이 7개월째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 연장은 못 박혀도 출구가 없다 — 11월 13일의 계산법
정부가 당장 제도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계산이 아니라 타이밍입니다. 유가가 다시 오르는 국면에서 상한가를 풀면 휘발유값은 리터당 수백원이 즉시 점프하고, 물가 상승률 2.9% 수준에서 상방 압력이 다시 커집니다. 그러면 11월 26일 한국은행 금통위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집니다. 한국은행은 이미 7월과 8월에 연속 인상을 단행했고, 내년 물가 전망치도 기존의 2.5%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입니다. 기름값 관리는 곧 금리 경로 관리와 연결돼 있습니다.그래서 현실적인 선택지는 연장 자체가 아니라 연장의 설계를 바꾸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방향은 세 가지로 정리됩니다. 상한가를 고정가가 아니라 유가와 연동되는 밴드형으로 전환해 유가가 오르면 상한도 천천히 오르게 하고, 손실 보전의 산정 기준과 지급 시점을 미리 공개해 정유사와의 마찰을 줄이고, 보편 보전 대신 연료비 비중이 큰 취약 계층과 업종을 선별해 직접 지원하는 것입니다.신 총재의 국감 답변이 방향을 압축합니다. 재정 상태가 비교적 양호해 조금 더 지속할 여력은 있지만 장기적인 제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연장은 가능하되 출구 설계는 지금부터라는 뜻이고, 11월 13일 발표는 그 설계가 처음 공개되는 자리입니다.
⑤ 계산서의 주인은 따로 있다 — 시사점
최고가격제는 기름값을 내리는 제도가 아닙니다. 지불하는 시점을 미루는 제도입니다.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덜 낸 돈은 정부 예산으로 갔다가, 결국 세금과 국채로 돌아옵니다. 7개월 동안 5조6000억을 미뤄둔 대가는 이자를 붙어 늘어나 있는 셈입니다.이번 실험이 보여준 구조적 교훈은 하나입니다. 임시 대책은 4주 단위 갱신 구조 자체가 출구를 흐린다는 것. 갱신 한 번은 정치적으로 가볍지만, 그 가벼움이 열두 번을 부르고 열두 번이 열세 번을 부릅니다. 제도를 계속하는 것이 정책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멈출지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 진짜 정책입니다.11월 13일 발표에서 봐야 할 것은 단순한 연장 여부가 아니라 세 가지입니다. 상한가 수준을 동결할지 오릴지, 손실 보전 기준을 문서로 공개할지, 그리고 보편 보전을 취약 계층 직접 지원으로 전환할지. 소비자에게 남는 결론은 명확합니다. 기름값의 계산법을 아는 사람이 이번 연말 지출에서 이깁니다.
참고문헌
- 서울신문 — 7개월 넘은 석유 최고가격제… 정부, 출구전략 고민 (2026. 10. 26.)
- 서울신문 — 최고가격제로 휘발유값 239원 상승 '억제'…재정부담 과제 (2026. 10. 23.)
- 뉴데일리 — 석유 최고가격제 7개월, 재정만 눈덩이… 정유사 손실 보상 기준 놓고 논란 (2026. 10. 29.)
- 뉴데일리 — 7개월 넘긴 석유최고가격제… 손실 눈덩이·수출 제한에 정유사 '속앓이' (2026. 10. 16.)
- 뉴스센터코리아 — 석유 최고가격제 연말까지 가나…4분기 손실보전 1.45조 반영 (2026. 10. 26.)
- 연합뉴스 — 석유 최고가격제 장기화 딜레마…재정부담에 출구전략 고민 (2026. 10. 23.)
- 뉴스핌 — [2026 국감] 한은, 내년 물가 전망 상향 예고…"최고가격제 장기 지속은 어려워" (2026. 10. 23.)
- 연합뉴스 — 이형일 "취약차주 추가대책 마련…11월 국채 물량 신중히 검토" (2026. 10. 29.)
- 매일경제 — [속보] 한은, 기준금리 연 3.00% '매파적 동결'…11월 인상 가시화 (2026. 10. 22.)
- 파이낸셜뉴스 — '과수요·고물가' 속 한은, 11월에 '호미' 꺼내나 (2026.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