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테크

HLB 사업보고서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5가지 사실

해시우드 2025. 11. 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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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B를 단순히 주식 시장의 뜨거운 감자나 항암 신약 개발사로만 본다면, 그 본질의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300페이지가 넘는 공식 사업보고서는 대담한 바이오테크의 야망과 놀라울 정도로 실용적인 수익 사업의 균형을 맞추며, 고도의 전략적 전환을 감행하는 기업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글에서는 HLB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의외이거나 영향력 있는 다섯 가지 핵심 포인트를 소개합니다.

 

HLB 사업보고서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5가지 사실

 

1. 밸브 공장에서 바이오 기업으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역사

HLB의 첫 번째 놀라운 사실은 제조업에서 바이오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 과정에 있습니다. HLB의 시작은 놀랍게도 바이오와는 전혀 무관한 중공업이었습니다. 1985년 '국제스텐레스밸브공업'으로 설립되어 '국제정공'을 거치며 산업용 밸브와 선박 부품을 만들던 회사가 오늘날의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이 극적인 변신은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되었습니다. 2022년 12월, 회사의 주된 사업을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에서 '의료용물질 및 의약품 제조업'으로 공식 변경하며 법적, 전략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은 2023년 5월, 회사의 주요 사업 중 하나였던 '선박사업부문'을 'HLB이엔지'로 물적분할하며 찍혔습니다.

 

이러한 과감한 사업구조 재편은 HLB의 미래 성장 동력이 오직 바이오 사업에 있음을 명확히 천명하는 전략적 선언입니다. 이는 안정적인 제조업 자산 기반에서 고성장·고위험 R&D 모델로 회사의 리스크 프로파일과 자본 배분 전략을 근본적으로 전환했음을 의미합니다.

 

2. 신약 허가 드라마: FDA의 문턱에서 마주한 중대한 규제적 난관

HLB의 핵심 파이프라인인 '리보세라닙'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았습니다. 리보세라닙과 중국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을 간세포암 1차 치료제로 개발, 큰 기대를 모으며 2023년 5월 성공적으로 미국 FDA에 신약허가신청(NDA)을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약 1년 뒤인 2024년 5월 17일, FDA로부터 최종보완요청서(CRL)를 수령하며 허가 과정에 중대한 규제적 난관을 마주했습니다. 시장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HLB는 포기하지 않고 보완 자료를 철저히 준비해 2024년 9월 20일 재심사 서류를 다시 제출하며 재도전에 나섰습니다. 이 롤러코스터 같은 과정은 신약 개발이 얼마나 험난하며, 높은 위험과 기대를 동시에 수반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3. 알콜스왑과 펨테크: 막대한 R&D를 뒷받침하는 의외의 현금 창출원

FDA 승인이라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HLB의 놀랍도록 실용적인 사업부가 존재합니다. 바로 우리 생활과 밀접한 제품을 만드는 안정적인 '헬스케어 사업부'입니다. 우리가 약국에서 흔히 보는 '알콜스왑'이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필수품이었던 '검체채취키트' 같은 체외진단 의료기기 및 의료소모품을 직접 제조하고 판매합니다.

 

특히 최근 주목받는 '펨테크(Femtech)' 제품군과 개인위생용품을 중심으로 올리브영 입점은 물론 해외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습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바이오의료기기 사업부는 2024년 한 해에만 194.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같은 해 기록된 1,185억 원의 막대한 영업손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 사업부는 단순한 리스크 분산 수단을 넘어, 신약 개발의 길고 불확실한 여정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희석 부담이 없는 핵심적인 내부 자금 조달원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4. 단일 신약 뒤의 정교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

2번 항목에서 언급된 FDA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험난한 과정을 극복하기 위해, HLB는 독자 개발의 한계를 넘어 정교하게 구축된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구사합니다. 주요 파이프라인은 한 회사의 역량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유망 기술을 발굴하고 협력한 결과물입니다.

  • 리보세라닙 (Rivoceranib): 핵심 신약인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특허권은 2020년 미국의 'Advenchen Laboratories'로부터 양수한 것입니다. 원천 기술을 외부에서 확보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캄렐리주맙 (Camrelizumab): 간암 치료제 병용요법의 또 다른 축인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은 중국의 거대 제약사 '항서제약'으로부터 글로벌 판권을 이전받았습니다.
  • 리라푸그라티닙 (Lirafugratinib): 최근 파이프라인에 추가된 담관암 치료제 리라푸그라티닙은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릴레이 테라퓨틱스(Relay Therapeutics)'로부터 글로벌 독점 라이선스를 확보했습니다.

이는 HLB가 단순히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라, 전 세계의 유망한 자산을 발굴하고 거래하는 정교한 딜 메이커로서의 역량이 핵심 경쟁력임을 보여줍니다.

 

5. 재무적 압박 속에서도 자금 조달이 가능한 이유

HLB의 재무제표는 바이오 산업의 본질적인 '고위험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2024년 연결기준 영업손실은 무려 1,185억 원에 달합니다. 이 막대한 손실은 2번 항목에서 살펴본 FDA 허가 과정의 막대한 R&D 비용과 변동성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이는 3번 항목의 안정적인 헬스케어 사업부가 왜 전략적으로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러한 대규모 손실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자금 조달이 계속된다는 사실입니다. HLB는 2024년 3월 제38회차 600억 원, 6월 제39회차 330억 원 등 한 해에만 총 930억 원의 전환사채(CB) 발행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는 투자자들이 현재의 손익계산서가 아닌, '리보세라닙'과 같은 핵심 파이프라인이 창출할 미래 현금흐름의 순현재가치(NPV)에 베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93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 발행 성공은 현재의 재무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HLB의 미래 가치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결론: 거대한 전환점 위에 선 기업

밸브 공장(1번)에서 시작된 HLB의 여정은 하나의 계산된 모순의 서사입니다. 과학자의 꿈(2번)을 제조업의 현실 감각(3번)으로 뒷받침하고, 고독한 발명이 아닌 글로벌 협력(4번)을 기반으로 하며, 천문학적인 손실이 경이로운 기대를 키우는 전형적인 바이오테크의 역설(5번)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HLB의 거대한 베팅은 전 세계 항암 치료의 역사를 바꾸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그 결과는 아직 미지수지만, 사업보고서 속 이 다섯 가지 사실은 그들의 도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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