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서버의 메모리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이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세계 NAND 플래시 점유율 3위 메모리 업체 키오시아(기오시아)가 9월 초 도쿄에서 연 기술 설명회에서 '고속 NAND로 DRAM을 대체한다'는 로드맵을 공개했고, 이 내용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을 통해 9월 3~4일 보도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핵심은 플래시 메모리의 한계를 뚫는 두 개의 숫자입니다. 키오시아는 대규모 AI 모델 구동에 필요한 대용량·고대역폭 메모리 모듈 '하이 밴드위스 플래시(HBF)'의 시제품에서 5TB(테라바이트) 용량과 초당 64GB 전송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모듈을 AI 칩의 옆자리, 즉 그래픽프로세서(GPU)와 가까운 위치에 직접 연결하겠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본체입니다. 지금까지 NAND는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보조 저장장치'였는데, 이제 DRAM이 앉아 있던 '좌석'을 노린다는 뜻입니다.

그림: 키오시아 NAND로 DRAM 대체 선언 메모리 지도가 흔들린다 — — 5TB HBF·CXL 모듈, NAND ASP 70% 급등과 한국 메모리 3강의 성역에 생긴 균열
NAND가 DRAM의 자리를 넘보는 순간, 반도체의 계급 구조가 흔들립니다. HBM·서버 DRAM·eSSD로 층층이 쌓아온 한국 메모리 3강의 성역에, 플래시라는 값싼 이단자가 처음으로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용량 16배, 값은 몇십분의 1' — 계급 구조를 흔드는 논리
키오시아의 계산은 기술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출발합니다. AI 서버의 데이터센터 수명주기 관점에서 NAND와 DRAM을 비교하면 플래시는 용량당 가격이 수십분의 1 수준이고, 용량 밀도는 8~16배 높습니다. 수명(SLC 기준 약 10만 회 기록 가능)도 데이터센터 운용에는 충분하다는 판단입니다.이 논리를 뒷받침하는 실증 데이터도 나왔습니다. 9월 초 도쿄에서 열린 CXL(씨엑스엘, 서버 안의 메모리를 하나의 풀로 묶어 확장하는 차세대 연결 규격) 관련 행사에서 키오시아는 NAND 기반 CXL 메모리 모듈을 공개하며 AI 서버의 DRAM 수요 일부를 '더 싸고 큰 메모리 풀'로 대체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CXL이 본격 보급되는 2027년 이후를 겨냥한 움직임입니다. 키오시아는 시제품에서 5TB 모듈이 기존 낸드 메모리의 약 16배에 해당하는 64GB/초 대역폭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대형 언어모델(LLM)의 추론 작업에서 데이터를 읽어 들이는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수준입니다.
키오시아가 이런 도박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전례 없는 실적이 있습니다. 8월 초 발표된 2026 회계연도 1분기(4~6월) 실적은 매출 1조 7,700억 엔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전년 동기 대비 약 1.8배 증가했습니다. 영업이익은 비GAAP 기준 1조 3,300억 엔(약 2.2배 증가), 영업이익률 75%에 달합니다. AI 서버용 SSD 수요가 폭증하면서 NAND 평균 판매단가(ASP)가 분기마다 약 70%씩 급등했고, 2026년 산 NAND 생산량은 이미 전량 계약이 마쳐진 상태입니다. 주가도 IPO 이후 540%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하며 일본 증시의 대표 'AI 수혜주'가 됐습니다.여기에 지원사격도 붙습니다. 일본 정부의 NEDO(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가 위탁한 '포스트 5G 정보통신 시스템 기반 강화 R&D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키오시아의 HBF는 국책 프로젝트의 산출물이기도 합니다. 기술 개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나눠 부담하는 셈입니다.
- 키오시아 HBF 시제품 — 5TB 대용량 × 64GB/초 고대역폭 플래시 모듈
- NAND 대비 용량 밀도 — 최대 16배, 용량당 가격 — 수십분의 1 (AI 서버 데이터센터 관점)
- FY26 Q1 실적 — 매출 1조 7,700억 엔(약 1.8배)·영업이익률 75%·NAND ASP 분기 70% 급등
- 2026년 NAND 생산량 — 이미 전량 매진, 2027년까지 공급 부족 지속 전망
- NEDO 포스트 5G 프로젝트 — 일본 정부가 개발 비용을 분담하는 국책 기술
NAND 대 DRAM,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 기술적 한계 읽기
물론 이 도박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NAND는 근본적으로 기록과 삭제를 '셀' 단위로 묶어 처리하는 구조라 DRAM보다 데이터 접근 지연 시간이 수백~수천 배 깁니다. 읽기 위주의 AI 추론 작업이라면 플래시 풀로 충분하지만, 순간순간 데이터를 다시 쓰는 학습 훈련이나 추천 엔진 같은 쓰기 중심 작업에는 여전히 DRAM이 필요합니다. 키오시아 스스로도 DRAM을 '완전 대체'가 아니라 '일부 대체'로 규정합니다. 우선적으로 노리는 곳은 대규모 언어모델의 추론 서버에 탑재된 거대 파라미터(가중치) 저장입니다.이 부분이 산업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추론이 AI 인프라 수요의 대세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에서는 학습보다 추론이 컴퓨팅 수요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봅니다. 키오시아의 HBF는 이 추론 시장의 병목을 정확히 겨냥합니다. 하지만 HBF가 실제 상용 제품으로 양산되려면 GPU·클라우드 업체의 생태계 지지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기술적으로 성공하더라도 '누가 사 주는가'가 남은 문제입니다.
한국 메모리 3강의 성역에 생긴 균열 — 삼성·SK하이닉스의 대응
이 소식이 한국에 특히 날카로운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의 계급 구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 시장은 속도·용량·가격의 삼각형 위에 분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빠르고 비싼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GPU 바로 옆에, 중간의 서버 DRAM은 중앙처리장치(CPU) 옆에, 가장 느리고 싼 NAND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는 구조였습니다. 한국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그중 HBM과 서버 DRAM이라는 최상위 두 자리를 사실상 독점하며 초호가를 누렸습니다.키오시아의 HBF는 이 계급 사다리의 가장 아래 있던 NAND가 위 두 계급의 자리를 위협하는 최초의 정면 도전입니다. NAND가 AI 추론의 메인 메모리로 쓰이기 시작하면, SK하이닉스가 앞서 시작했던 NAND 기반 eSSD(기업용 SSD) 사업의 위치도 달라집니다. 단순한 보조 저장장치가 아니라 '인프라의 핵심 부품'으로 격상되는 것입니다.다만 한국 메모리 3강은 이미 같은 방향에서 경쟁 중입니다. SK하이닉스는 CMM-DDR5 등 CXL 메모리 모듈 2세대를 공개했고, 삼성전자는 자체 테스트에서 1TB CXL 메모리 풀이 DRAM 수준 추론 성능의 약 92%를 달성했다고 발표했습니다. CXL 메모리 확장 시장을 두고 양사가 선점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키오시아는 NAND 기반으로 그 위에 또 다른 층을 얹겠다는 것입니다.
시장 가격면에서도 이 변화는 실체가 있습니다. 업계 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AI 수요가 시장을 잡아먹으면서 2026년 1분기 NAND 계약가격이 전 분기 대비 33~38% 상승, 기업용 SSD는 40% 넘게 급등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공급 부족은 2027년까지 이어진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키오시아에 이어 미국의 산디스크도 파운드리 파트너인 SK하이닉스의 평택 M17 캠퍼스에 극자성 eSSD 증설을 추진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등, 한국 파운드리와 일본·미국 낸드 업체의 이해가 맞물리는 지점도 생겼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위협이자 동시에 수주(오더) 기회입니다.
시사점 세 가지 — 원인·구조·전망
첫째, AI 메모리 기근이 만든 균열입니다. NAND가 DRAM 자리를 넘보는 일은 기술의 자연스러운 진화가 아니라, AI가 메모리를 너무 많이 먹어버린 결과입니다. HBM과 서버 DRAM이 먼저 매진되자 시장은 더 싸고 큰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플래시가 들어오는 구조입니다. 2026년 NAND 생산량 전량 매진은 이 기근이 일시적이지 않다는 증거입니다.둘째, 일본 메모리 부활의 시나리오가 달라졌습니다. 키오시아는 과거 DRAM에서 철수한 아픔이 있지만, 이번에는 정부 지원과 NAND 완성도라는 카드로 무장하고 AI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일본 정부도 2030년대 반도체 매출 15조 엔 시대를 복원하겠다는 국가 전략 아래 메모리를 전략 육성 품목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상대해야 할 대상은 삼성·SK하이닉스·마이크론뿐이 아닌 셈입니다.셋째, 계층형 메모리 시대의 개막입니다. 앞으로 AI 서버의 메모리는 HBM → DRAM → CXL 메모리 → NAND/eSSD의 피라미드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구조에서는 한 계급의 독점보다 계급 사이를 오가는 '다리'를 누가 소유하느냐가 이익을 결정합니다. CXL·차세대 규격을 둘러싼 표준 전쟁이 본격화하면, 한국 업체들이 하드웨어 외에 규격·생태계 주도권 싸움까지 준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키오시아의 선언 하나가 메모리의 계급 구조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AI는 가장 비싼 메모리부터 채우는 게 아니라, 가장 싼 메모리로 최대한 많은 것을 움직이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움직임의 끝에서 메모리 산업의 지도는 다시 그려집니다.
참고문헌
- Nikkei — Japan semiconductor maker plans to upgrade NAND to replace some DRAM (2026. 9. 4)
- Nikkei Asia — Tech: Kioxia aims to replace DRAM with high-speed NAND memory (2026. 9. 3)
- Kioxia — Kioxia Achieves Successful Prototyping of 5TB Large-Capacity and 64GB/s High Bandwidth Flash Memory Module
- Sedaily International — Kioxia Unveils NAND-Based CXL Module to Replace Some DRAM Demand (2026. 9. 5)
- SemiWiki — Kioxia's Flash-for-DRAM Initiative Eyes AI Workloads (2026. 9. 7)
- TrendForce — Kioxia 1QFY26 Gross Margin Hits 80%; Reaffirms 50% LTA Target for 2028 (2026. 7. 31)
- TrendForce — NAND contract prices to rise 33-38% QoQ in 1Q26 on AI demand (2026)
- Blocks & Files — Kioxia has a profitable yen for SSDs: Q1 FY2026 record revenue (2026. 8. 3)
- DigiTimes — Kioxia sells out 2026 NAND capacity as AI demand tightens global memory market (2026. 2)
- Korea Herald — Samsung, SK hynix push new memory layer as AI outgrows HBM (2026. 7. 20)
- Tech in Asia — Samsung, SK hynix push CXL memory for AI servers (2026. 7. 20)
- Nikkei Asia — Japanese companies see major opportunity amid India's semiconductor push (2026.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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