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7일, 한국 경제팀이 보기 드문 '행복한 고민' 앞에 섰습니다. 올해 세금이 예상보다 60조 원 이상 더 걷힐 전망이 나온 것입니다. 연간 세수는 사상 처음 465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고, 2022년의 종전 기록 395.9조 원을 70조 원 가까이 갈아치우는 수준입니다.그런데 이 풍년이 순전히 반가운 소식만은 아닙니다. 정부는 이 돈을 내년 출범하는 미래응대펀드로 넣어 투자와 지출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문제는 한국은행이 지금 금리를 올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앙은행이 총수요를 끌어내리는 동안 정부가 같은 돈으로 수요를 밀어 올리면, 인상의 효과가 서로 상쇄됩니다. 성장과 물가와 재정건전성, 세 가지 목표가 한 자리에서 충돌하는 이른바 트릴레마의 국면입니다.

그림: 60조 세수풍년의 함정 한국은행 반대편에 선 정부 — — 금리는 3%로 물가는 3.1%… 풍년의 돈이 갈림길에 서다
세수풍년의 진짜 시험은 '어디에 쓰느냐'가 아니라 '언제 쓰느냐'입니다. 경기가 뜨거울 때 걷힌 돈을 뜨거울 때 쓰면, 그 돈은 복지가 아니라 물가가 됩니다.
60조 원은 어디서 왔나 — 반도체가 만든 세금
풍년의 출처부터 짚어야 합니다. 올해 들어 7월까지 걷힌 세금은 274조 원으로, 1년 전보다 41.4조 원 늘었습니다. 목표 대비 징수율은 66.0%로, 최근 5년 평균 63.5%를 웃돕니다. 특히 법인세는 7월까지 51.8조 원으로 1년 전보다 4.4조 원 증가했습니다.핵심 동력은 단연 반도체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반기 영업이익 합계가 245조 원에 육박하며 반도체 호황이 그대로 법인세로 흘러들었습니다. 8~9월에는 12월 결산 법인의 중간 예납이 마저 반영되기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이달 말 발표할 수정 세수 추계에서 숫자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여기에 옥죄는 변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세법 개정으로 내년에는 법인세가 소득세를 제치고 1위 세목으로 올라설 전망입니다. 국가 재정이 특정 산업의 부침에 얼마나 깊이 종속됐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인데, 반도체는 원래 4년 주기로 오르내리는 산업입니다.
- 올해 세수 전망 — 465.4조 원 초과, 사상 최대 (2022년 기록 395.9조 원 갱신)
- 초과세수 규모 — 당초 예상 50조 원에서 상향, 60조 원 이상 전망
- 세수 증가의 진앙 — 삼성전자·SK하이닉스 상반기 영업이익 합 245조 원에 육박한 반도체 호황
- 징수율 — 7월까지 목표 대비 66.0%, 최근 5년 평균 63.5% 상회
- 세목 구조 변화 — 2027년 법인세가 소득세를 넘어 1위 세목으로 전망
미래응대펀드 162조, 여기에 60조를 더 얹으면
논쟁의 중심에는 미래응대펀드가 있습니다. 내년 출범 예정인 이 펀드는 2027년 국내 세수가 최근 10년 추세를 넘어서는 '초과분'을 재원으로 삼아 162.3조 원 규모로 시작합니다. 정부는 펀드를 두 가지 얼굴로 설명합니다.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는 전략투자 플랫폼이자, 세수 변동성을 흡수하는 재정 안정장치라는 것.문제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입니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초과세수를 이미 발행한 재정적자국채의 상환에 쓰도록 하지만, 개정안은 미래응대펀드로의 이체도 허용합니다. 올해 초과세수 60조 원이 통째로 이체되면 펀드의 재원은 산술적으로 222조 원을 넘습니다.정부는 펀드로 옮긴 돈이 곧바로 사업비로 풀리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저금통이 커질수록 집행 여력도 커지고, 그만큼 지출로 전환하려는 압력도 커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실제로 정부안대로면 펀드 주요 사업비를 국회에 수정 운용계획을 내지 않고도 최대 30%까지 항목 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일반 비금융특별회계의 20%보다 넓은 재량입니다.
돈이 어디로 흐르는지도 중요합니다. 펀드의 세부 사업 140개를 직접 분류한 결과, 자본 형성과 인적자본 투자는 45.36조 원 사업비 중 19.01조 원, 41.9%에 그칩니다. 반면 농어민 기본소득, 아동수당, 청년 문화예술패스 같은 현금성 이전 지출은 8.96조 원, 19.8%입니다. 현금 지출은 인공지능이나 전력망 같은 공급 측 투자보다 단기 총수요를 밀어 올리는 힘이 큽니다.결국 이 돈의 쓰임새는 초과세수를 떠안은 채 만든 820.9조 원 내년 예산의 성격을 그대로 담습니다. 내년 총지출은 올해보다 12.8% 늘어 역대 최대 증가율이고, 국채 발행은 펀드 재원으로 12.5조 원 줄이는 그림입니다. 재정은 확장하고, 숫자상 적자는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금리 인상 국면에서 재정이 반대로 가면 생기는 일
한국은행의 행보를 보면 왜 전문가들이 속을 태우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금통위는 7월 3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2.75%로 올린 데 이어, 8월 27일 연속 두 번째 인상으로 3.00%를 선언했습니다. 2025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7명 위원 중 6명이 찬성했고, 황근일 위원만 2.75% 동결을 주장했습니다.물가가 인상의 이유입니다. 8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1% 올랐고, 식품과 에너지를 뺀 근원물가는 3.4%까지 치솟았습니다. 한국은행이 내건 목표는 2%입니다. 여기에 정부가 초과세수 60조 원을 재원으로 지출을 늘리면 어떻게 될까요. 한국재정학회 김우철 회장은 27일 "재정을 풀면 금통위가 지금까지 올린 금리 인상 효과를 지워버릴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경기 흐름상 이런 조합은 '순경기적 재정'의 교과서 사례로 비판받습니다. 하나금융투자 박준우 애널리스트는 초과세수를 재원으로 한 확장 국면의 지출 확대는 승수가 낮아도 과열과 물가 압력을 부추기는 방향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인상은 비용도 유발합니다. 10년물 국고채 금리가 최근 4%대 중반까지 오른 상태에서 재정 확장이 성장·물가 전망을 밀어 올리면 장기금리 하락의 길은 더 멀어집니다. 이자 부담은 커지고, 소비와 투자는 다시 질립니다.
한국은행은 물가를 잡으려 돈을 끌어들이고, 정부는 풀년의 세금으로 돈을 풀려 합니다. 두 정책이 반대 방향으로 달릴 때 지불하는 프리미엄이 바로 4%대 장기금리입니다. 이 비용은 결국 국민 모두의 대출이자와 연금 수익률에 찍힙니다.
아일랜드·칠레는 어떻게 나눴나 — 펀드 설계의 원형
선진국들은 비슷한 고민을 이미 통과했습니다. 아일랜드는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 저축, 단기 충격 대응, 국내 전략투자 세 가지 목적을 서로 다른 펀드로 분리했습니다. 목적마다 규칙이 다르고, 규칙이 다르면 국회의 감시 지점도 명확해집니다. 칠레는 구리 가격과 경기 순환 같은 추세 변수에 연동해 저축과 인출 시점과 규모를 미리 정해뒀습니다. 시장이 아니라 규칙이 돈의 출입을 결정하는 구조입니다.반면 한국의 미래응대펀드는 재정 안정과 전략투자라는 성격이 다른 두 기능을 한 통에 담았습니다. 연세대 김정식 명예교수는 지금이 대폭 인상이 필요한 국면은 아니라면서도, 이 환경에서 재정이 과도하게 확장되면 유동성과 금리 상승 압력이 동시에 쌓인다고 진단했습니다. 요컨대 '언제, 얼마를 저축하고 언제 인출할지'의 객관적 기준이 펀드 안에 없다는 것. 이것이 해외 사례와 한국안의 결정적 차이입니다.
순풍의 세수, 역풍의 유산 — 세 가지 관찰 포인트
이 사안이 한국 경제에 남길 흐름은 세 갈래로 정리됩니다.첫째, 세수 구조의 취약성이 공식화됩니다. 법인세가 1위 세목으로 올라서는 순간, 국가 재정의 사계절은 반도체의 사계절과 같아집니다. 펀드가 변동성 완충 장치로 기능하려면 인출 기준이 법에 명시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둘째, 재정·통화 정책의 줄다리기가 공식전이 됩니다. 물가 3% 시대에 두 정책이 다른 방향을 보면 금리는 더 오르고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재정을 다시 압박하는 순환이 시작됩니다. 셋째, 국회 감시의 지점이 이동합니다. 30% 재량 항목 조정권과 3년 이월 조항이 그대로 통과되면, 펀드 집행의 상당 부분이 예산 심사 밖에서 움직입니다.
- ① 수정 세수 추계(9월 말) — 60조 초과세수의 최종 규모와 법인세 중간 예납 반영치 확인
- ② 미래응대펀드법 국회 처리 — 초과세수 이체 허용 여부와 30% 항목 재량 조항의 운명
- ③ 10월 말 금통위 회의 — 재정 확장이 물가 전망에 미치는 영향이 통화정책에 반영되는지
- ④ 10년물 국고채 금리 — 재정·통화 정책의 간극이 장기금리로 청구서를 낸다
60조 원의 풍년은 한국 재정에 처음 주어진 여유가 아니라, 오래 묵었던 질문에 이자가 붙어 돌아온 것입니다. 호황기에 걷힌 돈은 어떻게 보관하고 언제 꺼내 쓸 것인가. 아일랜드는 통을 나눠 답했고, 칠레는 규칙으로 답했습니다. 한국의 답은 미래응대펀드라는 미완의 그릇에 담겨 국회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릇의 모양이 아니라 뚜껑이 얼마나 단단한지가, 다음 불황이 왔을 때 이 풍년이 자산이 되는지 부채가 되는지를 가릅니다. 그 결정은 12월 예산 협상의 탁자 위에 놓여 있습니다.
참고문헌
- Seoul Economic Daily — Korea Faces Trilemma as Spending, Inflation and Debt Collide (2026. 9. 27)
- Seoul Economic Daily — Korea's 2026 Tax Revenue to Exceed Forecast by Over 60 Trillion Won (2026. 9. 27)
- Aju Press — Korea's 2026 excess tax revenue seen topping 50 tln won (2026. 9. 27)
- Yonhap News Agency — (2nd LD) BOK raises key rate for 2nd consecutive session to 3 pct, revises up 2026 forecast to 3.3 pct (2026. 8. 27)
- The Korea Herald — Gov't launches W162tr fund to cushion chip-driven tax swings (2026. 9)
- The Korea Herald — Assembly kicks off 100-day regular session (2026. 9)
- Korea Economic Daily — Ahn Do-gul: Financial Stability Plate for Future Response Fund Volatility (2026. 9)
- KORInform — Korea proposes record 820.9 trillion won budget for 2027 (2026. 9. 2)
- Yonhap News Agency — Editorial: Superexpansionary budget sustainability questioned over 162 trillion won Future Response Fund (2026. 9. 3)
- Moneycontrol — South Korea tax windfall seen above 50 trillion won: Report (2026. 9)
- Korea JoongAng Daily — Bank of Korea raises interest rate to 2.75% and signals more rate hikes (2026. 7)
- EY Tax News — Korea enacts 2026 tax reform bill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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