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일, 일본 노동법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개정 노동정책 종합추진법이 시행되면서 고객의 폭언, 부당한 요구, 집요한 협박 등 이른바 고객 괴롭힘(카스하라)에 대한 대책 마련이 모든 사업주의 법적 의무가 됐습니다. 대상은 대형 서비스업이 아니라 업종과 규모를 가리지 않는 전체 사업주입니다.지금까지는 고객 응대의 부담을 현장 직원 개인의 인내와 재량에 맡겨왔습니다. 비명과 폭언을 견디는 것이 서비스 정신으로 미화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무게중심이 직원 개인의 감당에서 회사의 고용관리 책임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고객은 왕이라는 시대의 종언이라고 표현합니다.이 소식은 한국 노동자에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 한국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은 가해자가 사용자나 동료 등 회사 안 사람일 때만 적용됩니다. 고객에 의한 괴롭힘은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새 제도를 분해해 보고, 한국과의 구조적 차이와 시사점을 짚어봅니다.

그림: 일본 카스하라 방지법 '고객은 왕'의 종언 — — 10월 1일 사업주 의무화, 한국은 사각지대
카스하라 대책의 본질은 고객 불만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요구했는가와 어떻게 요구했는가를 분리해서, 후자가 사회통념의 한계를 넘으면 회사가 나서서 직원을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소비자 권리의 축소가 아니라 응대 방식의 규칙화입니다.
카스하라란 무엇인가 — 세 가지 요건의 정의
일본 후생노동성 지침은 고객 괴롭힘을 세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되는 행위로 정의합니다. 첫째, 고객이나 거래처, 시설 이용자 등 사업과 관계가 있는 사람의 언동일 것. 둘째, 노동자가 맡은 업무의 성격과 사정을 볼 때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을 것. 셋째, 그 결과 노동자의 취업환경이 해칠 것입니다.범위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매장 손님만이 아니라 거래처 담당자, 계약 교섭 상대방, 병원이나 학교 같은 시설 이용자와 그 가족까지 포함됩니다. 오프라인 창구만이 아니라 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한 언동도 대상입니다. 기업 간 거래만 하는 회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거래처의 폭언, 납품 압박, 회의석상의 모욕이 노동자의 취업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도가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입니다.
판단의 핵심은 요구의 내용과 수단·태양을 분리해 보는 것입니다. 상품 하자를 지적하는 것 자체는 얼마든지 정당합니다. 그러나 상품과 전혀 관계없는 요구, 계약이 상정하는 서비스를 현저히 넘는 요구, 사실상 이행 불가능한 요구, 근거 없는 배상 요구는 내용 자체가 사회통념의 한계를 넘은 것입니다. 요구에 근거가 있어도 폭행, 협박과 모욕,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는 강요, 집요한 반복, 퇴장 거부 같은 방식은 수단으로서 한계를 넘은 것입니다.소비자 권리를 위축시키려는 게 아니라는 점도 지침에 명시돼 있습니다. 장애인이 차별적 취급의 중단을 요구하거나 사회적 장벽 제거를 요구하는 것 자체는 고객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제도의 목적은 민원 자체가 아니라 인격 침해를 걸러내는 데 있습니다.
- 내용이 한계를 넘는 경우 — 근거가 전혀 없거나 상품·서비스와 무관한 요구, 계약 범위를 현저히 벗어난 요구, 사실상 불가능한 조치 요구, 부당한 배상 요구
- 수단이 한계를 넘는 경우 — 폭행 등 신체적 공격, 협박·모욕·폭언과 사죄 강요, 위협적 행동, 집요한 반복, 퇴장 거부·점거·감금
- 대상의 범위 — 소비자, 거래처, 계약 상대방, 시설 이용자와 가족. 전화·SNS 언동 포함, 기업 간 거래(B2B) 포함
- 명시적 제외 — 상품 하자 지적 등 정당한 불만 제기, 장애인의 차별 시정·합리적 배려 요구
왜 의무화됐나 — 숫자가 말하는 심각성
입법의 직접적인 계기는 후생노동성의 실태조사입니다. 2023 회계연도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에서 최근 3년간 직원의 고객 괴롭힘 상담을 접수한 기업이 27.9%로 집계됐는데, 이는 2020년 조사보다 8.4%포인트 상승한 수치입니다. 상담이 접수된 사례의 유형을 보면 집요하게 반복되는 행위가 72.1%, 위협하는 행동이 52.2%, 폭언이나 사죄 요구 같은 심리적 공격이 44.7%였습니다.더 흥미로운 것은 비율의 대비입니다. 2023년 조사에서 고객 괴롭힘을 겪은 노동자의 비율은 직장 내 성희롱을 겪은 비율보다 높았지만, 이에 대응 조치를 취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빈도는 높고 대응은 늦은 이 격차가 입법의 명분이 됐습니다.
제도는 급조되지 않았습니다. 도쿄도가 2025년 4월 1일 고객 갑질 방지 조례를 먼저 시행했고, 2025년 6월 관련 법률 개정이 공포됐으며, 2026년 2월 후생노동성 지침이 고시된 뒤 9월에 개정판 매뉴얼로 보완됐습니다. 같은 10월 1일부터는 구직자를 상대로 한 성희롱 방지 대책도 함께 의무화됐습니다. 채용 면접, 인턴십, 사내 동문과의 접촉까지 규율 범위가 확장된 것입니다.
사업주가 갖춰야 할 것 — 의무 조치의 네 층위
법이 요구하는 조치는 크게 네 층위로 정리됩니다. 첫째, 방침의 명시와 주지입니다. 고객 괴롭힘에 단호히 대응하고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방침을 정해, 사보와 사내 홈페이지, 교육자료를 통해 관리자를 포함한 전 직원에게 알려야 합니다. 최고경영자 메시지 같은 형식도 예시에 포함됩니다.둘째, 대응 절차의 사전 설정입니다.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직원이 즉시 상사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도록 하고, 가능한 한 혼자 응대하게 두지 않으며, 필요하면 관리감독자가 대신 응대하는 구조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후생노동성 예시에는 교환 내용의 녹음·녹화, 충분한 설명 후에도 요구가 반복되면 일정 시간 뒤 퇴장 요청이나 통화 종료, 폭행·협박 등 범죄에 해당하면 경찰 신고, 본사로의 에스컬레이션, 법무 부서와 외부 법률 자문 연계까지 담겨 있습니다.
셋째, 상담 체계입니다. 노동자가 피해를 호소할 상담창구를 미리 정해 알려야 하고, 담당자가 상황에 맞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 피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한 애매한 단계에서도 폭넓게 상담을 받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사건이 커진 뒤의 사후 처리가 아니라 초기 징후 관리까지 요구하는 구조입니다.넷째, 사후 조치와 보호입니다. 사실관계 확인, 피해 노동자 배려(심리 지원, 경우에 따른 배치 전환), 재발 방지 조치가 의무입니다. 상담자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상담이나 조사 협조를 이유로 해고나 불이익 처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알려야 합니다. 악질 사례에 대해서는 경고문 발송, 출입 제한, 서비스 제공 중단, 가처분 신청 같은 대응 정책을 관련 법령 범위 안에서 미리 정해두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안내합니다.
주목할 조항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자사 직원이 타사 직원을 괴롭힌 경우, 상대 기업이 사실 확인을 요청하면 협력해야 한다는 의무입니다. 거래처 상사가 을의 직원에게 폭언하는 상황에서 을이 사실 확인을 요청했을 때 갑이 협력하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갑을 관계의 구조 자체를 제도가 건드리는 대목입니다.
직접적인 벌금은 없지만, 실효성은 행정지도와 명성에 있습니다. 대응이 부적절하면 노동행정당국의 조언, 지도, 권고를 받게 되고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기업명이 공표될 수 있습니다. 진짜 리스크는 이보다 큽니다.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사회적 신용의 훼손, 그리고 견디지 못해 떠나는 인재들입니다.
한국의 사각지대 — 근로기준법이 못 닿는 곳
한국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2019년 7월 16일 시행)는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제76조의3은 괴롭힘 발생 시 사용자에게 객관적 조사와 당사자 조치, 재발 방지 의무를 지우고, 위반 시 과태료가 부과됩니다.그런데 이 체계의 요건 하나가 공백을 만듭니다. 가해자가 사용자나 동료 등 직장 안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고객, 이용자, 거래처에 의한 괴롭힘은 이 조항의 밖에 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예방·대응 매뉴얼도 직장 내 괴롭힘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고객 응대 중 발생하는 갑질에 대한 사업주의 조치 의무를 법이 강제하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의 피해 노동자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개별 구제 수단입니다. 폭행·협박·모욕·명예훼손에 해당하면 형사 고소를, 회사가 알고도 방치했다면 판례상 확립된 사용자의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책임의 출발점이 회사의 시스템이 아니라 피해자 개인의 결심과 입증이라는 점이 일본의 새 제도와 정반대입니다.시간 순서를 보면 아이러니가 더 선명해집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입법은 한국(2019년)이 일본(2020년 대기업 의무화)보다 앞섰습니다. 그러나 고객 괴롭힘은 일본이 2020년 지침에서 권고 수준으로 언급한 뒤 6년 만에 의무화를 완성한 반면, 한국은 대응 논의가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서비스업 밀집 구조와 플랫폼 노동의 확대를 고려하면 1인 응대 부담이 더 큰 쪽은 오히려 한국일 수 있습니다.
- 가해 주체 — 일본: 고객·거래처 등 외부인까지 전면 규율 시작 / 한국: 사용자·동료 등 내부인만 규제
- 사업주 의무 — 일본: 상담창구·대응 절차·악질 사례 정책까지 세부 의무화 / 한국: 고객 괴롭힘은 법정 의무 없음
- 제재 수단 — 일본: 조언·지도·권고와 기업명 공표, 배상 리스크 / 한국: 직접 규제 없음, 개인의 형사·민사 구제에 의존
- 입법 순서 — 직장 내 괴롭힘은 한국이 먼저(2019 vs 2020), 고객 괴롭힘은 일본이 먼저(2026)
시행 첫해의 과제 — '불만'과 '갑질'의 경계 그리기
일본 기업들의 최대 고민은 기준 그리기입니다. 공익법인 소비자관련전문가회의가 시행을 앞두고 회원사 46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264곳 응답)에서 절반가량이 정당한 불만과 갑질을 구분하는 문제를 최대 우려·과제로 꼽았습니다. 경계가 모호하면 두 가지 실패가 동시에 옵니다. 직원 보호를 명분으로 정상적인 민원 처리를 회피하는 실패, 고객 만족을 명분으로 명백한 폭언을 방치하는 실패입니다.이 경계는 결국 회사의 매뉴얼과 교육이 그립니다. 후생노동성도 이를 인지해 택배, 슈퍼마켓, 음식점, 교육, 돌봄, 장애인 복지, 지방자치단체 등 업종별 매뉴얼을 별도로 정리해 공개했습니다. 무엇이 요구됐는가, 어떤 방식이었는가, 몇 번 반복됐는가, 직원이 혼자 응대해야 했는가를 문서로 정리하는 작업이 시행 첫해의 핵심입니다.
시사점 — 소비자 권리와 노동 보호의 새 균형
일본의 카스하라 방지법은 흔한 우려와 달리 소비자의 목소리를 줄이는 법이 아닙니다. 요구의 내용과 전달 방식을 분리해, 내용이 정당하더라도 방식이 폭력적이면 사업주가 개입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소비자 주권과 노동자의 취업환경이 충돌할 때 판단의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이 이 법의 몫입니다.한국에 남는 과제는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입법 논의의 밑그림입니다. 일본 시행 첫해의 집계와 분쟁 사례는 고객 괴롭힘 규율의 필요성과 경계선을 검증하는 자료가 됩니다. 둘째, 기업의 자발적 대응입니다. 법이 없어도 매뉴얼과 상담 체계를 갖추는 일은 이직률과 고용 브랜드, ESG 평가에 직결됩니다. 셋째, 보호의 사각지대 점검입니다. 플랫폼 노동처럼 고객 접점이 많고 고용 보호가 약한 영역일수록 규범의 공백이 큽니다.관찰할 지표도 명확합니다. 후생노동성의 첫해 실태 집계, 권고와 기업명 공표의 실제 사용 여부, 그리고 일본에 매장과 법인을 둔 한국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대응입니다. 이 제도는 이미 일본에 발을 들인 한국 기업에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 고객은 왕이라는 문구 대신, 회사가 지키는 직원이 고객을 지킨다는 문구를 세울 시점입니다.
참고문헌
- Orrick, Herrington & Sutcliffe — Japan Employment Law Alert: Mandatory Measures Against Harassment by Customers and Against Sexual Harassment towards Jobseekers (2026. 9. 28.)
- MONOLITH LAW OFFICE — Mandatory from October 2026: What is the Anti-Harassment Law, Measures and Practical Responses Required for Companies (2026. 4. 28.)
- Lexology — Customer Harassment Prevention Now a Statutory Obligation for Employers in Japan (2026. 4. 9.)
- Japan Ministry of Health, Labour and Welfare — Workplace Harassment Survey FY2023, Customer Harassment Countermeasure Corporate Manual (2026. 9. revised)
- SAKURA Law Office — Legal Update: Customer Harassment Prevention Now Obligatory for All Employers (2026. 9. 30.)
- 한겨레 — '고객 갑질 방지법' 시행 앞…일본 기업 절반 "불만과 구별 어려워" (2026. 9. 29.)
- 한국투데이 — 일본 고객 괴롭힘 대책 의무화…10월부터 모든 사업주가 준비해야 할 것 (2026. 10. 1.)
- MSN 뉴스(도쿄나우) — '무조건 사과하지 마라', 일본 서비스업 문화가 바뀐다 (2026. 10. 1.)
- 고용노동부 —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응 매뉴얼 (2023.)
- 국가법령정보센터 —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제76조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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