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같은 두 여성이 국민연금공단 상담 창구를 찾았습니다. 둘 다 55세, 둘 다 평생 소득이 없고 보험료를 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상담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미혼 여성은 과거 기간의 보험료를 채워 넣어 연금을 받을 길이 열렸지만, 평생 살림과 육아를 맡아온 기혼 여성은 그 길조차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을 가른 것은 소득도 나이도 아닌, 오직 결혼 여부 하나였습니다.10월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공단은 이 어긋난 구조를 바꾸겠다고 공식화했습니다. 결혼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국민이 자기 이름의 연금을 쌓게 하는 '1인 1연금' 가입구조 개편입니다. 전업주부와 무소득 청년 등 제도 밖에 내몰렸던 667만 명이 연금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내용입니다. 1988년 도입 이후 38년 만에 가구 단위 설계가 흔들리는 순간입니다.

그림: 국민연금 1인 1연금 개편, 결혼하면 연금 사라지던 법이 바뀐다 — — 667만 명 사각지대 편입, 최대 119개월 추납의 기회와 함정
1988년의 국민연금은 남성 외벌이 가정을 기본값으로 상정했다. 38년이 지난 지금, 그 기본값이 가족의 노후를 무너뜨리는 코드가 되었다. 이번 개편은 제도가 기억하지 못한 사람을 다시 기억하는 작업이다.
① 무슨 일 — '결혼하면 연금이 사라지는 법'의 종언
현행 국민연금법은 냉정할 정도로 명확하게 나뉩니다. 소득 있는 가입자의 무소득 배우자, 주로 전업주부와, 보험료 납부 이력이 없는 만 18세 이상 27세 미만의 무소득 학생·군인은 '적용제외자'로 분류되어 법적 가입 대상 자체에서 빠집니다. 반면 같은 무소득이라도 27세 이상 미혼자는 '납부예외자'로 인정되어 가입자격을 유지합니다. 납부예외자는 당장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나중에 소득이 생겼을 때 과거 기간의 보험료를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공단이 검토하는 개편안의 핵심은 이 경계를 없애는 것입니다. 무소득 배우자와 무소득 청년을 모두 지역가입자의 납부예외자로 편입하고, 취업 등으로 소득이 생기면 해당 기간의 보험료를 되짚어 내는 추후납부, 흔히 줄여 말하는 추납으로 최대 119개월까지 가입기간으로 인정받게 하는 방식입니다. 공단은 지난 6월 가입구조 개편 전담 조직을 꾸렸고, 보건복지부도 업무 계획에 '1인 1연금'을 공식 명시했습니다.
- 적용제외 폐지 — 소득 있는 배우자를 둔 무소득 배우자도 지역가입자(납부예외)로 편입 추진
- 청년 편입 — 만 18세 이상 27세 미만 무소득 학생·군인도 가입자격 확보
- 추후납부 확대 — 소득 발생 후 과거 기간 보험료 납부, 최대 119개월 인정
- 지원 상향 —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기준 월 소득 80만 원 미만에서 100만 원 미만으로 확대 추진
- 법 개정 필요 — 국회에 적용제외 조항 폐지 법안 이미 상정된 상태
② 원인 분석 — 38년 묵은 '1가구 1연금'의 유산
이 어긋남의 출발점은 1988년 제도 설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국민연금은 한 가구에 한 사람, 남성 가구주가 가입하면 부부의 노후가 보장된다는 '1가구 1연금' 모델 위에 세워졌습니다. 제도 도입 초기 소득대체율, 즉 평생 평균 소득 대비 연금이 메워주는 비율이 70%에 달했기 때문에 남편의 연금 하나로 두 사람의 생계가 가능하다는 계산이 성립했습니다.문제는 그 뒤 소득대체율이 단계적으로 인하되면서 1인 연금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불가능해졌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법은 38년 동안 가구 단위 틀을 그대로 유지했고, 기혼 무소득 배우자는 제도가 성장하는 동안 계속 밖에 서 있었습니다. 올해부터는 18년 만의 연금개혁으로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13%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3%로 높이는 변화가 시작됐지만, 가입 자체가 안 되는 사람에게는 인상도 하락도 무의미했습니다. 수급 구조의 개편이 아니면 근본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연금 수식에서 결혼 여부라는 변수를 빼는 일. 그것이 이번 개편의 본질이다. 제도가 가족을 보호하겠다면서 특정 가족의 절반을 38년간 지워온 모순이 드디어 수정되고 있다.
③ 숫자로 보는 사각지대 — 954만 명, 3명 중 1명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기준 만 18~59세 인구는 2940만 명입니다. 이 가운데 공적연금 가입자는 국민연금 2093만 명과 특수직역연금 180만 명을 합쳐 2273만 명입니다. 나머지가 연금의 지도에서 빠진 사람들입니다.공단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사각지대 규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적용제외자 667만 명, 실직 등으로 납부를 멈춘 납부예외자 242만 명, 장기체납자 45만 명을 합하면 954만 명, 의무가입 연령 인구의 32.4%에 달합니다. 성인 3명 중 1명이 연금 밖에 서 있는 셈입니다.
- 만 18~59세 인구 2940만 명 — 사각지대 포함 전체 분모
- 공적연금 가입자 2273만 명 — 국민연금 2093만 + 특수직역연금 180만
- 적용제외자 667만 명 — 전업주부·무소득 청년, 전체 사각지대의 약 70%가 이번 개편의 직접 대상
- 납부예외자 242만 명 + 장기체납자 45만 명 — 합산 954만 명, 의무가입 연령 인구의 32.4%
④ 왜 지금인가 — 여성 노후가 이미 무너지고 있다
개편 시점의 당위성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습니다. 2025년 말 기준 지역가입자 중 스스로 소득을 신고한 여성의 평균 납부기간은 116개월로, 연금 수급 최소 조건인 120개월, 즉 10년에 미달합니다. 제도권에 발을 들였어도 문턱을 못 넘은 사람이 대다분이라는 뜻입니다.그래서 여성들은 제도 밖에서 자력구제를 해왔습니다. 본인 희망으로 가입하는 임의가입자 33만 3717명 중 여성이 26만 8113명으로 80% 이상을 차지합니다. 60세를 넘어서까지 가입기간을 채우는 임의계속가입자 중 여성은 남성의 2.2배입니다. 개편이 현실화되면 이제까지 추납 문이 닫혀 있던 기혼 여성도 최대 119개월까지 과거를 채워 넣을 수 있고, 소득 요건을 충족하면 보험료 지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3명 중 1명'은 통계표 속 숫자가 아니라 우리 집 식탁의 이야기다. 그 32.4% 안에 어머니와 배우자, 성인 자녀가 가장 많이 서 있다.
⑤ 숨은 함정 — 목돈 추납 재테크와 역진성의 귀환
그러나 문을 활짝 여는 데는 비용이 따릅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소득 가구의 전업주부가 노후 직전에 목돈으로 최대 119개월치 보험료를 한 번에 추납하고 높은 수익비의 연금을 타 가는 그림이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과거에도 강남권 등을 중심으로 추후납부가 부유층의 연금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그 결과 추납 한도를 10년 미만으로 제한한 전력이 있습니다.전문가들이 내놓는 처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추납할 때 적용하는 기준소득월액, 즉 보험료 계산의 기준이 되는 월 소득 산정 방식을 정밀하게 다듬어 고소득층의 일시납 편중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둘째, 저소득 무소득 배우자가 실질적인 혜택을 받도록 보험료 지원과 출산·돌봄 크레딧, 육아 기간을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장치를 미리 부여해 결합하는 것입니다. 문을 여는 설계와 문이 열린 뒤의 규칙이 함께 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 역진성 리스크 — 고소득 가구의 노후 직전 목돈 일시 추납으로 한정 재정이 부유층 연금 재테크로 유출될 우려
- 과거 전례 — 강남권 추납 재테크 비판으로 추납 한도를 10년 미만으로 제한했던 역사
- 처방 1 — 추납 시점 기준소득월액 산정 정밀화로 고소득층 편중 차단
- 처방 2 — 보험료 지원 + 출산·돌봄 크레딧 사전 부여 결합으로 저소득층 실효성 확보
⑥ 전망 — 확정되기 전에 지켜볼 3가지
이번 개편은 아직 방침 단계입니다. 확정된 시행일은 없고, 국민연금법 개정과 세부 기준이 정해져야 실제로 적용됩니다. 지금까지 확정된 것은 청년 첫 보험료 지원이 2027년 1월 1일부터라는 점 정도입니다. 농어업인 대상 월 최대 지원금도 올해 5만 350원으로 인상됐습니다. 개편안의 다른 부분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앞으로 지켜볼 지점은 세 가지입니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처리 속도, 추납 설계에서 기준소득월액을 어떻게 매길 것인가, 그리고 보험료 지원과 크레딧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는가입니다. 이 세 가지가 결정되어야 954만 명이 실제 수혜자가 될지, 아니면 제도의 겉면만 바뀔지가 판가름 납니다.
연금 개혁의 성패는 '누가 얼마를 받느냐'가 아니라 '제도가 기억하지 못했던 사람을 어디까지 기억하느냐'로 판가름난다. 954만 명의 노후는 기회의 크기가 아니라 설계의 정직함을 지켜볼 것이다.
참고문헌
- UPI — South Korea plans pension coverage expansion for 6.67 million (2026. 10. 22.)
- The Korea JoongAng Daily — Major pension reforms to increase contribution rates, benefits to take effect in 2026 (2025. 12. 29.)
- 헤럴드경제 — 국민연금 '1인 1연금' 전환… 전업주부·청년 667만명 편입 추진 (2026. 10. 22.)
- 뉴스1 — 전업주부·무소득 청년도 국민연금 가입 추진… 667만 명 혜택 (2026. 10. 22.)
- 파이낸셜뉴스 — 결혼해도 국민연금 유지… 전업주부·청년 667만명 품는다 (2026. 10. 22.)
- 뉴스센터 — 전업주부·무소득 청년도 국민연금 '지역가입자'로… 667만 명 사각지대 손본다 (2026. 10. 24.)
- JKN — 소득 없으면 가입 제외됐던 전업주부·무소득 청년 667만 명 국민연금 편입 (2026. 10. 25.)
- 브라보뉴스 — 국민연금 1인 1연금 개편: 사각지대 954만 명 총정리 (2026. 10. 25.)
- 국민연금공단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주요업무 현황 (2026.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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